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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k on view at <Any Other Generation>, Jungnang Art Center, Seoul, 2018. Wooden chairs and tennis balls, dimension variable

같으면서 또 다른 세대들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

3인의 여성 미술가들이 펼치는 중랑아트센터의 기획전 《다른 세대들(Any other generation)》은 위의 시 ‘다른 눈물들’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30대, 40대, 70대의 3인 작가들이 펼치는 ‘다른 세대들’이란 전시는 이들 3인의 세대들이 ‘한 존재의 다른 형태’임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generation)은 흔히 ‘비슷한 연령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것은 대개 30년을 단위로 하는 시간의 층위로 표현된다. 한편 그것은, 사전적 정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 가문의 역사적 단계를 이루는” 시간의 층을 의미하거나 “한 생물이 생겨나서 생존을 끝마칠 때까지의” 기간을 지칭하기도 한다. 불명료한 지칭들 사이에 존재하고, 모호한 구분을 호명하는 ‘세대’라는 개념은 애초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한 존재의 다른 형태’로 현시되는 우리 맘 속 분별일 뿐일지도 모를 일이다.

전시는 영국, 일본, 미국에서 장기간 유학 생활을 하면서 다른 문화를 경험했던, 각기 ‘다른 세대’의 3인의 미술가들이 펼치는 3인 3색을 통해서 ‘세대’라는 것이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한 존재’임을 발언한다. 전시는 마치 하나의 삶을 3개의 방을 통해서 들여다보게 만드는 커다란 하나의 ‘창’처럼 자리한다. 신진, 중진, 원로의 구분조차 무화시키는 3인의 열정적인 작업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전시 《다른 세대들》이 함유하는 깊은 의미들을 곱씹어 보자.

…김영주(1987~ ), 잉여의 초상과 변형의 생산

나는 안다. 문명의 찌꺼기들이 남긴 도시의 확장이 언제나 소외를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갈등해 왔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따져 묻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말이다.

나무 구조물 위에 특수 원단으로 외피를 씌운 작가 김영주의 쉐이프트 캔버스들은 증식하는 도시 풍경의 은유처럼 보인다. 매끈하게 증식을 거듭하는 도시의 이면에 인간 소외의 그늘이 있듯이, 매끈하고도 유려한 외관을 유지하는 외피의 팽팽한 장력과 싸움을 벌어야 하는 나무 구조물의 사투와 그로 인한 아픔이 존재한다. 화려한 도시 뒤편에 개발로 밀려난 허름한 판자촌의 우울이 있었듯이, 그녀의 변형 캔버스의 완벽한 구조 뒤에는 비틀린 채 신음하는 불완전한 잉여물의 우울이 자리한다. 그것은 마치, 작가의 언급처럼, 언어의 구조로부터 탈각된 영어의 전치사, 한글의 후치사와 같은 존재이다.

김영주의 초기의 작품 〈도시의 극〉에서 그리기와 지우기가 무수히 겹쳐지는 검은 오일파스텔의 지난한 흔적, 그리고 작품 〈순간의 연쇄〉에서 팽팽한 외피가 상기시키는 은폐와 억압은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남는 소외와 잉여를 상기하게 만든다. 가히 도시로부터 비롯된 ‘잉여의 초상’이라 할 만하다.

누락되고 소외된 잉여의 존재는 억울하다. 그것들은 제 기능을 못할 바에야 자신의 몸을 비틀어 변형의 존재로 재배치되고 재생산을 꿈꾸기로 한다. 그녀의 신작 〈음소거〉 설치 작업은 그렇게 태어났다. 의자나 테이블로 보이는 구조물들은 이가 빠지고 성대와 척추를 잃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불구의 상태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무한다. 연둣빛 눈물방울이 맺힌 눈가를 훔치고 마음을 추스르면서 일어나는 그들만의 공동체를 보라! 그것은 ‘쓸모없는 것들’이 만드는 이름 없는 도시의 풍경이자.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깊은 우울의 샘으로부터 건져 올리는 침묵의 교향곡이다.

- 전시 서문 발췌

http://www.daljin.com/index.php?WS=31&BC=cv&CNO=358&DNO=16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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